들려주고픈 얘기

다니엘 카네기의 처세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

Lee-Sun 2007. 5. 27. 08:44
사람을 움직이는 일에는 상대가 바라는 것을 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과연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 다니엘 카네기는 자신의 저서인 '처세술'을 통해 당신이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 그 모두의 방법과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살인, 약탈, 강간, 방화 등의 범행을 일으킨 범죄자는 대개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그것을 정당화하고 따라서 그것 때문에 형무소 생활을 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유명한 실업가 존 워너에이커는 "30년 전에 나는 남을 비판하고 꾸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다. 자기 자신의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다. 하느님이 만인에게 평등한 지혜와 능력을 부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까지 화를 낼 여유는 없는 것이다." 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매우 큰 실수나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어도 결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과오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는 것은 아무 쓸모 없다. 상대는 곧 방위 체제에 들어갈 것이고,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다친 그 상대는 결국 반항심을 일으키게 되어 사태가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마치 하늘을 바라보고 침을 뱉는 것과 같아서 그 침은 결국 자기 얼굴에 떨어지게 된다고 카네기는 충고한다. 남의 과오를 꾸짖던가 남을 공격하거나 하면 결국 그 상대는 거꾸로 나를 원망하게 되고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리엄 링컨은 "악의를 버리고 사랑을 가져라. 남의 재판을 네가 받기를 원하지 않거든 남을 재판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

보통 사람들은 타인을 비판하는 데에는 매우 열의를 보이지만 자신의 결점을 고치는 데에는 매우 인색하며 어려워한다. 섣불리 다른 사람을 교정하기보다 자신을 고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되고 위험성도 적다. 영국의 시인 브라우닝은 "자신과 싸우기 시작한 자는 결국 자기가 가치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게 된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자기와 싸우고 자기를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누구나 금년 1년은 꼬박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성공하게 되면, 내년에는 멋진 새 해를 맞이할 수 있다. 남을 헐뜯기 전에 자신이 먼저 완벽해져야 하는 조건이 붙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죽도록 원망을 받고 싶은 사람은 타인을 신랄하게 비판하면 된다. 그 비판이 옳고 신랄하고 논리적일수록, 효과는 100%일 것이다. 남을 피할 때 그 상대를 논리의 동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감정의 동물이며 편견에 차 있고, 자존심과 허영심에 의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남을 비판하는 일은 즉 위험한 불꽃놀이와 같은 것이다. 그 불꽃은 자존심이라는 화약의 폭발을 유발하기 쉽다.

영국의 사상가 칼라일은 "진정한 위인은 그를 소인 취급하는 사람에 의해서 그 위대함을 더해 간다."면서 역사의 전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대신 그 사람을 이해하는 편이 더욱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 사람이 왜 나로 하여금 자기를 비난하고 싶은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 그렇게 하면 동정, 관용, 호의가 생기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을 용납하게 된다.

친구를 얻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는 이 세상에서 그 방면에 가장 우수한 존재가 된 비결을 배우면 된다고 카네기는 설명한다. 타인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그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면 된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화사한 옷차림이나 단정한 머리 모양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몸에 치장한 옷이나 화장보다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도 없는 기계적인 미소는 오히려 상대를 화나게 만들 수도 있다. 진실로 우러나는 미소, 마음의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천금의 가치가 있는 웃는 얼굴이 바로 자신의 사교성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매우 어렵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행한 일만 일어나는 사람에게는 진실의 미소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럴 때는 억지로라도 웃어보고 일부러 행복해서 견딜 수 없다는 제스처로 행동하라고 권유한다. 동작은 감정을 따라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동작이란 감정과 병행하는 것이다.

감정은 동작을 조정하는 데 따라 간접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쾌활성을 잃었을 때, 그것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뭇 쾌활한 체 행동하고 쾌활한 체 지껄이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을 추구하는데 행복을 틀림없이 찾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기의 기분을 자기의 뜻대로 조정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이다. 어떤 기분을 갖는가에 달렸다. 행복은 외적 조건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분 하나로 뜻대로 할 수 있다.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재산, 지위, 혹은 직업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무엇을 불행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생각이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된다.

또 매우 중요한 것은 상대와 대화하는 방법이다. 상대의 말을 성의껏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의 상담 전문 정신의학자인 찰스 엘리오트 박사는 "상담에는 특별한 비결 따위는 없다. 다만 상대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칭찬도 그만한 효과는 가져오지 못한다." 하고 말했다. 사소한 일에 핏대를 세우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그 중에는 상당히 악질적인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악질일수록 참을성 있게 진심으로 자기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아무리 화가 나서 늑대처럼 이빨을 드러내 있더라도 그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개 고즈넉해지는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오래 듣고 상대가 말을 하는 사이에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지체없이 상대의 말을 가로막지 말고 상대의 말이 지적 수준이 낮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듣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꺾을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 성의있게 들어주는 태도는 상대로부터 경멸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하거나 미움을 받는 일을 애초에 차단시켜 버린다.

그러나 이 같은 조항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흔치 않다. 니콜라스 버틀러라느 심리학자는 "자기의 직업과 관련된 업무만 생각하는 사람은 교양이 없는 인간이다. 예를 들면 아무리 교육을 받았더라도 교양이 몸에 배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카네기는 화법이 출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인간이 되라고 충고하고 있다. 상대로부터 흥미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쪽에서 흥미를 가져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중요한 법칙이 한 가지 있다. 이 법칙을 따른다면 대개의 분쟁은 피할 수 있다.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친구는 한없이 늘어나고, 항상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칙을 깰 것 같으면 금방 한없는 분쟁에 말려들게 된다. 그 법칙이란 '항상 상대에게 중요감을 갖게 할 것'이다.

존 듀이는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원망은 인간의 가장 뿌리 깊은 욕구라고 했으며,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원망이라고 말했다. 인간관계의 법칙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수천년에 걸쳐 사색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그 사색 속에서 단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새로운 교훈은 아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일은 너 또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가치가 인정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작지만 자기의 세계에서는 자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뻔한 공치사는 듣고 싶지 않지만, 진심으로부터의 칭찬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자기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찰스 슈워브의 말마따나 '마음으로 인정하고 아낌없이 칭찬'받고 싶다고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황금률에 따라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일을 상대에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칭찬의 철학은 외교관이나 자선회 회장이 되기까지는 그것을 응용할만한 길이 없다든가 하는 따위의 것이 아니다. 날마다 응용하여 크게 마술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다지 큰 저항을 느끼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타인이 나의 과오를 지적하면 화가 나고 짖궂은 사람이 된다. 우리는 실로 멋대로 된 동기에서 여러가지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 신념을 누가 바꾸려고 나서면 우리는 한사코 반항한다. 이 경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신념 그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자존심인 것이다.

'나의...'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사실은 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한 말이다. 이 말을 올바로 포착하는 것이 사리분별의 기초가 된다. 나의 식사, 나의 집, 나의 강아지, 나의 아버지, 나의 나라, 나의 하느님... 나의 아래에 무엇이 와서 붙건 '나의...'라는 말에는 힘이 들어있다. 우리는 자기의 것이라면 시계건, 자동차건, 혹은 여러가지 학문적 지식이건, 아무튼 그것이 상처를 입으면 굉장히 화가 난다. 우리는 진실이라고 믿어 속아온 것을 언제까지나 믿고 싶은 것이다. 그 신념을 흔드는 것이 나타나면 화가 난다. 그리고 무슨 구실을 붙여서 그 신념에 매달리려고 한다. 결국 우리의 소위 그 논쟁은 대개의 경우 자기의 신념을 고집하기 위한 논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끝나는 것이 된다.

자기의 과실을 인정하는 일은 그 인간의 가치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뭔가 고결한 느낌이 들어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자기가 옳을 때는 상대를 부드럽게 교묘하게 설득하는 것이 좋다. 또 자기가 틀렸을 경우 그러한 때는 다소곳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위에 괴로운 변명을 하기보다 그 편이 훨씬 유쾌하고 마음이 편한 것이다. 옛말에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잘못을 즉시 유쾌하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만이 상대를 설득시키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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