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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지어 빠는 이 남자 |

Lee-Sun 2007. 6. 20. 22:05

브레지어 빠는 남자

 

 

요즘 아내의 브레지어를 내가 빨래한다. 아내가 원해서?. 아니다. 그냥 내가 빨래를 하고 싶어서이다. 아내가 걸치는 것들 중 유독 브레지어만. 아내의 브레지어는 빨래비누나 세제를 사용해서 빨래를 하지 않는다. 세안용 한방비누를 사용해서 빨래를 한다.


세월이 좋은 때라 브레지어를 세탁기에 돌려서 빨 수도 있겠지만, 달랑 브레지어 하나만 빨래를 하는데 웬 세탁기. 예전엔 브레지어를 세탁기에 돌리다가 브레지어가 망가지는 경우가 생겨난다. 물론 브레지어 만드는 기술력의 원인일 수도 있고 세탁기의 기술력의 원인일 수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브레지어가 상하지 않도록 브레지어 빨래망에 넣어서 세탁기에 돌리는 사례들이 있긴 했지만, 내가 알기론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난 모른다. 왜냐면 내가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날 세면장 빨래감통에 얹혀져 있는 브레지어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브레지어로 내 아내의 유방이 안녕하시고 있을까. 탄력있는 가슴을 원하는 남성들에 의해서 가슴을 받쳐주기 위한 부단한 여성들의 길고 긴 노력의 역사.

 

장구한 세월속에서 가슴을 가려주는 그리고 가슴이 쳐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여성들의 욕구와 그 노력은 본인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알고보면 남성들의 가슴에 대한 환타지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왠지 모르게 아내의 가슴을 둘러싸는 브레지어가 그다지 달갑지 않게 느껴졌지만, 어쩌랴 브레지어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을. 소시적에 잠시 브레지어를 보는 것 만으로도 성적 욕구가 충만해졌던 때를 회상해 보면, 여성의 가슴을 상징하는 브레지어 그 자체만으로도 섹슈얼하지 않는가.

 

탄력을 잃어가는 아내의 유방.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가슴 빵빵하게 하는 유방성형수술은 해 줄 처지도 아니다. 그렇다고 돈 있다고 하더라도 난 아내의 가슴을 성형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 돈으로 아내의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는데 쓰게끔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그리고 세월의 흐름속에서 자신을 가꾸기 위해서 운동으로 탄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말리지 않는다. 가슴의 탄력을 위해서 혹은 몸짱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으로 육신의 온존함을 지향하는 것은 발 벗고 나서서 응원할 것이다.

 

40대 여성을 겨냥한 "몸짱 아줌마" 마케팅이 판을 치고 있다. 자본주의의 그 오묘함이 묻어나는 마케팅. 44 몸매를 위해서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각고의 고통을 수반한 노력을 보면 내가 울고 싶어진다.

 

인간은 생물학적 나이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여성들이 몸짱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아닐지라도 55사이즈 옷이라고 입고서 농염한 중년여성의 섹시미를 유지하고자 발버둥치는 신드롬에 빠져드는 것도 한민족의 독특한 성향 탓이다.

 

내 아내의 허리는 두 아들을 낳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렇다고 운동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 몸이 불어 날 수 밖에. 살 좀 빼라는 잔소리를 접은지도 오래이다.

 

갈수록 살이 붙는 아내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적 나이와 생물학적 퇴행에 순응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본인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닌거 아니냐고.

 

난 말이지, 몸짱 아줌마되는거 절대 원하지 않어. 자기 자신의 몸뚱아리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예의를 갖추는 정도만 보여주길 바란다고. 그 뭐시냐 44니 55니 이런거 원하지도 않는다고.

 

살이 붙으니 가슴으로도 살이 붙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탄력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처져 가는 아내의 가슴이지만 난 이에 순응하고자 한다. 아내의 가슴이 나에게 성적 흥분을 추동시킬만큼 섹슈얼하지 않지만, 아내의 가슴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나에게 평온함을 주는 아내의 가슴. 이런 아내의 가슴을 감싸는 브레지어를 빨아주는게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아내는 말한다. 왜 하필이면 내 브레지어냐고. 난 말한다. 그냥. 내가 당신에게서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는 진원지가 바로 당신 유방이니까. 당신 유방에 대한 예의야.

 

 

 

 

Edit  YUP